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75)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준민 판사는 17일 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5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이에따라 지난해 10월26일 구속됐던 김 전 회장은 6개월 만에 석방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들 진술의 신빙성이 높고,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폭로하게 된 경위가 자연스럽다"며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무고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무고할 동기가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그룹 총수의 지위에 있음에도 그런 책무를 망각했다"며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지시에 순종해야 하는 관계를 악용해 범행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장기간 수사기관의 수사에 응하지 않았고 뒤늦게 귀국해 체포되는 등 범행 후 정황이 좋지 않다"고 부연했다.
다만 “김 전 회장이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아 이들이 모두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동종 성폭력 범죄 전력이 없는 점,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한 점, 고령인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2016년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자신의 별장에서 일한 가사도우미를 8차례 성폭행·성추행하고 2017년 2~7월에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비서를 29차례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7월부터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체류하던 김 전 회장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경찰 수사를 피했다.
그러다가 경찰이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적색 수배자 명단에 그를 올리자 지난해 10월에 귀국했고, 공항에서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은 공소사실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과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였다고 주장했다.